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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 황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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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ks******)

2021.08.05 14:09:14 | 1,035 읽음



정경선 HGI 의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아산나눔재단 NPO 팀장으로 일했다.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체인지메이커들이 행복하게 일해야 사회가 조금 더 빠르게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2012년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를 설립했다. 비영리 법인만으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2014년 본격적으로 소셜벤처에 투자하기 위한 임팩트 투자사 HGI를 창립했으며, 계속해서 국내외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임팩트 생태계 확장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글. 정경선 HGI 의장



2021년 여름은 이래저래 인류에게 암울한 때입니다. 백신이 개발되고,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접종이 진행되면서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되기를 바라던 것도 무색하게 델타, 람다 변이의 출몰로 뒤늦게 폭발적인 확산을 겪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의 중저소득국가들은 크나큰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겪고 있습니다. 

또한, 6월 미 북서부와 캐나다를 강타한 40도가 넘는 폭염과 7월 서유럽의 역사적인 수준의 폭우와 그로 인한 대홍수로 수백명의 목숨을 잃기까지. 바야흐로 종교 서적에 표현되는 종말의 날이 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초월적 존재가 인류의 오만함과 부덕함을 징벌하려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데이터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인과로 인하여 벌어진 일입니다.

 

지구가 매년 재생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을 지구 생태 용량이라고 하는데, 인류는 이미 20세기 말부터 매년 지구 생태 용량을 초과하여 사용하고 있고, 현재는 매년 1.6배를 소모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이 수치가 2배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자원은 남용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배출된 오염물질들을 제대로 처분하지 않았으니 필연적으로 인류의 삶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지금 전세계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극단적인 기후 현상들은 197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꾸준히 경고해 오던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열심히 화석연료를 사용한 것으로 인한 결과이고, 2년 가까이 우리를 전무후무한 상황으로 밀어 넣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우리를 괴롭힐지 모르는 코로나19는 우리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난개발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기초과학 교육과 합리적 추론 능력보다는 무조건적인 암기식 교육만 받고,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나와 다른 이들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그때 그때의 정치적 이득이나 행정적 편의성을 위하여 남들을 배척하는 방법만 배운 이들이 이제 와서 반백신주의자, 비과학 음모론 신봉자가 되어 모든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도 우리의 과거 행동이 야기한 결과이며, 그 어떤 초월적 존재의 개입도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류의 탐욕과 무지에 탄식합니다만, 잘 생각해보면 지금 모든 활동들은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들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인류가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정도로 막강한 파괴력(?)을 갖게 된 역사 자체가 턱없이 짧으니까요. 인류가 지금의 인류 형태를 띈 호모 하빌리스 시절 이후로 200만년에 가까운 시간의 대부분을 우리는 매일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버린 플라스틱 봉지가 저 멀리 어딘가 바다거북의 식도를 막고, 에어컨을 틀고 추워지면 이를 끄는 대신 창문을 살짝 여는 행위가 30년 후 서울의 대홍수로 이어지진 않을지 고민하는 습관이 DNA에 내재화되기에는 20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압축적인 발전을 해버렸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에 대하여 고민하는 임팩트 비즈니스, 임팩트 투자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비표준적인 사람들입니다. 인류가 이렇게까지 오래 지속해온 데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소진해 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을 다독이고 이끌어 미래를 대비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인류는 임팩트 종사자들에게 그다지 우호적지만은 않았습니다. 발바닥 패치 같은 유사과학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현혹하여 불필요한 소비에 불필요한 자원 낭비까지 하게 만드는 “스타트업”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대규모 투자를 받는 사이에 임팩트 비즈니스들은 얼마나 많은 투자자들에게 ‘성장과 분배 중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란 사상검증을 당했던 가요.


 하지만 그런 굴욕적인 생활도 이제 끝일지 모릅니다. 이제 드디어 임팩트가 주류가 되는 사회가 도래하였습니다. 이제 뉴스에서는 기업 활동과 관련하여 ‘ESG’라는 단어를 빼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노래하며, 당사들이 앞으로 어떻게 더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조직이 될지를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트렌드를 가장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 현대 자본주의의 거인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움직임입니다.


 2천 5백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KKR은 2018년 13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임팩트 펀드를 런칭하였고, 최근 2호 펀드의 투자자들을 모집 중입니다.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 중에서는 임팩트 투자로는 선구자인 TPG는 가수 보노, 스티브 잡스의 미망인 로렌 파월 잡스, 이베이 창업주 피에르 오미디야르 등 그야말로 임팩트 계의 어벤저스와 함께 이미 수십억 달러의 임팩트 펀드를 조성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골드만 삭스까지 뛰어들어서 작년 10월 외부에서 임팩트 펀드를 운용하던 임원을 영입하여 Sustainable Investing Group이란 임팩트 투자 전담 조직을 신설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임팩트 세상의 군웅할거이며, 이렇게 많은 거대한 조직들이 임팩트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상 전세계의 임팩트 조직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 유치를 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겠죠? 그리고 그들이 해결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엄청난 자본 투입으로 해결되기 시작할 테구요.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임팩트 사모펀드의 런칭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바로는, 안타깝게도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글로벌 임팩트 투자 시장은 정보 비대칭, 운용사간의 부익부 빈익빈, 넘치는 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양질의 투자 기회, 일단 뭐든지 임팩트로 붙이는 그린워싱 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근원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인간의 단기 이익 중심적 행동이 있습니다.


 임팩트 투자에 대해서 배우고자 하는 분들이 처음 접하는 시각 자료 중 하나가 다음과 같은 임팩트 투자의 스펙트럼입니다.


(출처) The Bridgespan Group


투자, 혹은 자본 집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임팩트와 수익률에 따라 투자 종류가 나뉘어 진다는 이야기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고 임팩트, 고 수익률 투자는 누구나 원하지만 거의 찾기 힘든 황금 성배와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초대형 임팩트 펀드들은 임팩트 잠재성은 높지만 수익률이 낮거나 너무 규모가 작은 딜은 무시하고, 대충 지속가능성 테마에 부합하는 대형 인수합병 딜이나 유니콘을 찾아 투자한 후 사후 임팩트 해석을 붙이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탓할 수도 없는 건, 애초에 그들의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안전하면서도 수익률이 높은 임팩트 투자’를 바라면서 일단 운용사의 브랜드만 믿고 돈을 집어넣었기 때문이죠.



저는 고 임팩트, 고 수익률의 임팩트 유니콘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모펀드를 시작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러한 유니콘이 나오기까지는 해당 솔루션의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기부, 무상 지원, 고 위험 벤처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도 초반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하고 싶어하지 않고 그저 과실만 거두고 싶어하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이런 상황에서 KKR이 2021년 5월 전세계 최대 지속가능성 자문 법인인 ERM 최대 주주 지분을 30억 달러 가치에 인수하고, 사모펀드의 제왕인 Blackstone도 이에 질 세라 6월에 ESG 소프트웨어, 데이터 회사인 Sphera를 13억 달러 가치로 인수한다고 발표한 소식들은 단순한 임팩트 투자 모집을 넘어 임팩트 생태계에 대한 투자를 신호하는 것 같아 다행인 것도 같습니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대형 조직과 기관들이 임팩트를 표방하고 나서는 것은 분명 희망적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임팩트에 대해 고민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단기적 이익에 골몰하다가 발생한 거대한 장기적 손실-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대형 조직과 기관들은 앞으로 전체론적인 임팩트 생태계 조성에 대한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며, 전문가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성을 이룰 수 있을 지에 대한 자기검열도 결코 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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